오늘의 식단

  새로 이전한 사무실은 건물전체가 금연지역이라 담배를 피우려면 꾸역꾸역 밖에까지 기어나가야 하는데, 동물원을 떠올리게 하는 대나무가 쭉쭉뻗은 주차장옆 금연구역은 어찌나 분위기가 정겨운지 나올때마다 언제나 한대를 더 피우고 들어가게 하곤 한다.  가끔 지나다니는 차들은 나로선 뭔지도 못알아보는 삐까뻔쩍한 외제차들. 십년전쯤 내가 처음 이공간에 발을 딛어 봤을땐 느끼지 못헀던 스노비시한 공기에 오늘 아침에도 숨은 막히고,  한산한 퇴근 시간 집으로 가는 길위에선 마지 내가 외계인인듯 느껴지지만. 괜찮아 괜찮아. 어쨌든 나는 합벅적인 외계인이니까. 한전앞 보도블럭은 너무 깨끗해서 요즘엔 꽁초도 꼬박꼬박 쓰레기통에 버리고, 차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무당횡단도 하지 않는다고.

그나저나.
맥주는 한캔이 남아있는데, 담배는 두대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를 어쩌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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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뒤 금연구역에서 담배불을 붙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45도쯤의 위를 올려보면 자그마한 피아노 학원이 보이는데, 나름 방음시절엔 신경을 쓰셨는지 눈을감고 귀를 귀울여야 희미하게 서투른 피아노 소리가 들리곤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무슨곡인지 내가 알아먹을순 없었지만, 어쨌든 바람결에 실린듯한 희미한 소리들은 그만큼이나 희미한 옛기억들을 종종 떠오르게 해서, 요즘엔 담배피러 나가면 의례 두대씩 피우게 되더군.

나원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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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드를 들을때면 언제나 그해 사월이 떠오르곤 했었는데, 그건 아마도 K가 Coming Up 테잎을 사서 내게 빌려준것이 그해 삼월이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그해 사월은 내인생 드물게도 비교적 한가했으며 낮에는 언제나 내방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스웨이드를 들었으니까.  그기억이 어느덧 팔년전. 요컨대, 이젠 스웨이드도 올드팝이거야. 너바나가 그랬던것 처럼.  Head Music 이후론 듣지 않았고 그전에도 늘 최고의 앨범은 Dog Man Star였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Coming Up에 애착이 갔던것은 아마도 그런 개인적인 기억들이 아롬아롬 새겨져 있기 때문에. 나는 그해, 비교적 한가했고 종일 낮에는 뒹굴뒹굴대며 그 앨범을 들었고, 그앨범을 들으면서 그아이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첫사랑’ 이라고 말하는것을 그시절 브렛 앤더슨의 목소리와 함께 겪은 셈인데, 그것이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명확히 판단이 되지 않는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곡은 아름다기 그지 없었던 Picnic By The Motorway.  We could go dancing, we could go walking, we could go shopping, we could keep talking, 비가올것 같았는데 끝끝내 오지 않았던 그날낮에 하루종일 뒤로 돌려가며 몇번이나 들었던

담배가 한대밖에 안남았군 . 맥주 살때 같이 샀어야 하는건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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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를 처음 만나던 시절 우리는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꼬박꼬박 그거리를 걷고 걷다가 어딘가에로 들어가곤 했었는데, 그 시절엔 오랜 기억속에서 꺼내든 그앨범에서 Satuday Night을 종종 듣곤 했었다. 사귀기 전에는 늘 주말에만 만났으니까, 요컨대 그녀는 나에겐 토요일의 여인이었던 셈이었다. 언제나 토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올지 안올지 모를 그녀의 문자를 기다렸다.  종종 일이 늦게 끝났던 날엔 그녀가 내가 들려주던 왜이리 늦냐는 짜증섞인 목소리까지 하이톤의 E코드 처럼 들릴 정도로.  Today she’s been working, she’s been talking, she’s been smoking, but it’ll be alright, 그리고 Cos tonight we’ll go dancing, we’ll go laug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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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곡정도가 들어있는 IPOD를 전체 랜덤으로 듣는다는건 거의 매순간이 새로운 발견의 순간들인데, 모르는 곡이 나오면 어 이런곡이 있었나 하는 심정으로 아는곡이 나오면 아 이럴때 이곡이 나오는구나 즐거워 하며 듣게 되기 때문에 어떤곡이든 대체로 새로운 기분으로 듣게되곤 한다. 뭐, 맘에 안들면 다음으로 넘기면 되고.  얼마전 술먹어줄 사람 없어 우울한 기분으로 돌아오던 퇴근길엔 오랜만에 Picnic By The Motorway가 걸렸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거 들으면 위험해 지겠구나 싶으면서도 뭐 결국은 끝까지 듣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해 사월의 기억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이상하지. 예전에 이곡을 들을때는 그 시절의 풍경. 감정. 기분 뭐 그런것들 마치 손 내밀면 너무도 늦어버린 지금에도 잡힐듯 눈앞에서 어른대곤 했었는데. 벌써 십년을 바라보고 있는 07년 5월의 어느날엔 그 정경, 그날 오후 회사뒤 흡연구역에서 들릴듯 말듯했던 쇼팽의 멜로디 처럼 너무도 희미해져 버려서 이젠 정말로 내가 그때 그랬었니. 혹시 내가 그시절 매일같이 내가 눌리던 가위탓에 꾸었던 슬픈꿈이었던건 아니었었니 생각이 들만큼. 그토록 간절했었던 나름 애절했었던 그시절의 기억들조차 아직 십년도 되지 않은 시간들 사이에서 이토록 작아져 버리고 이토록 묻혀져 버리면 앞으로 살아가며 내가 느낄 그어떤것들에 대해 나 정말로 간절해질수 있을것인지 라고 의심이 들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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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담배가 다 떨어졌으니 여기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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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_=

어쨌든. 슬펐다.  그시절 그 기억이 내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토록 바라면서도 끝끝내 내가 가지지 못했던 무엇이어서 슬펐던것 만큼이나, 시간이 흐른다음엔 그 기억마저도 이렇게 쉽게 지워져 갈수 있었다는것에.

그러니 안녕. 안녕. 해묵은 기억들과 아직 내가 미처 손놓지 못한것들에. 여전히 내가 포기 하지 못했거나 그리워하고 있는것들에 대해. 그 기억들은 이제 과거에 남아있고 그 과거에 남은 기억은 시간과 함께 지워질것이며 난 그 시간속에서 그래도 죽는날까지는 살아가야죠.  그러니 슬프지만. 안녕. 안녕. 애닯고 가슴이 아프지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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